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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정리정돈 글쓰기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찾을 수 있나?

기독교인이신 어머니께서는 진정한 사랑은 이슬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즉 사랑이란이라는 것은 소유하려 만지는 순간 사라지는 이슬처럼, 소유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사람이 생긴다면 우리는 멀리서 지켜보고 아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들은 예수가 아닌 인간이라는 점이다.

사랑을 정의하는 방법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독교적 신앙론에서는 단 한사람도 제외하지 않고 만인을 사랑해야한다는 아가페적 사랑론이 있고,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사고하는 이성간의 사랑이 아닌 선생과 제자와의 남성간의 사랑(당시에는 남자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인 플라톤적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다.그 외에도 시대와 관점에 따라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의미는 서로 다르게 정의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나는 우선 호이징아의 ‘호모 루덴스’라는 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호이징아가 생각한 인간의 기원은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 혹은 호모 에렉투스(행동하는 사람)이 아닌,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호이징아의 정의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동이 놀이라는 것에 기본이 된다는 것인데, 이는 놀이가 가지고 있는 특징, 놀이를 하는 ‘나’와 ‘너’가 존재한다는 인간의 관계성, 그리고 놀이라는 틀 안에서 존재하는 규칙, 그리고 그 규칙에 따라 나눠지는 승자와 패자의 관계에 따라, 패자가 승자에게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놀이의 절대 불변의 규칙, 즉 ‘나’와 ‘너’간의 주고받음(give and take)을 인간의 행동과 감정의 기본 배경으로 정의하였다.

 

주거니 받거니~

우리는 이러한 호이징아가 내리는 인간의 정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진정한 사랑을 정의하는데 적절히 사용될 수 있다. 특히나 모든 대상의 가치가 시장에서 화폐로 거래(주고받음) 되고 있는 현재 사회에서 이 주고 받음 원칙은 우리의 모든 행동의 근간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배경이다. 우리는 예수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이슬바라 보듯이 바라볼 수 없다. 우선 사랑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상대를 소유하려 시도할 것이고, 그 상대를 소유(take) 하는 댓가로 우린 무언가를 제공(give)해야 한다. 그것이 노후에 대한 안정일 수도 있고, 당신의 사랑함을 증명할 수 있는 긴 시간과 엄청난 노력일 수도 있고, 혹은 하룻밤의 뜨거움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GIVE AND TAKE는 인간의 행동의 기본원칙이고, 특히 이 GIVE AN TAKE가 극대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즉 GIVE를 해야지, 사랑을 TAKE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