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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정리정돈 글쓰기

내 전부를 보여줄 사람이 존재할까?

자기소개서. 전국의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정말 지긋지긋한 단어일 것 이다. 대게는 800~1000자 정도 되는 양을 요구하는데 대략 A4용지 한 장 정도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는 전문적인 전공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취준생들이 이 때문에 힘들어하고, 심지어 돈을 쓰면서 까지 전문 첨삭업체에 맡기곤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청년들의 지적수준과 지식의 절대적인 양은 증가할지는 몰라도,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자신만의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만의 시간이 자기 자신을 알아 갈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전부를 알 수 있을까?

 

 

먼저 개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전부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부터 밀어 닥친다. 과연 나 자신을 어느 한 범위로 정의할 수 있을까? ‘호모 루덴스’의 저자인 호이징아는 인간의 기원이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나 호모 에렉투스(행동하는 사람)가 아닌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사람)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은 상대가 없을 때는 인간으로서의 행동을 규정지을 수 없고, 상대가 있을 때만이 인간으로서의 행동이라 규정하였다, 즉 ‘너’와 ‘나’가 존재한다는 관계성이 인간의 행동과 사고의 기본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를 토대를 보면 나와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관계성이 모두 각기 다르므로, 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나의 행동은 달라질 수밖에 없어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들과 여러 환경에 놓이고, 그렇기에 자기 자신의 전부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 하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전부를 보여줄 수가 없다. 대상이 누군가 되었든 내 전부를 모르니 말이다.

그렇다면 조금 범위를 좁혀보자. 우리는 평범한 일상속에서도 많은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소심하게는 학점이나 토익성적, 자신의 키나 몸무게가 있을 것이고 좀 더 심오하게 들어간다면 과거의 치부나 비도덕적인 속내일 수도 있다. 나는 내 자신을 개인적으로 아주 솔직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키는 167cm이고, 중하위계층의 외동아들이며, 토익이 이번에 쳤는데 아마 900은 넘을 것 같다. 학점도 친구들에게 다 말해주고, 누구한테 고백했는데 차인 것 까지 다 말한다. 자랑도 아니고 겸손도 아닌 그냥 사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모든 것을 보일 자신이 없다.

먼저 이것은 내가 내 자신을 보여주는 대상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친구들에게는 좋아하는 여학우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부모님에게는 못한다. 부모님과는 가족사나 친척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친구들에겐 못한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호이징아가 언급한 관계성의 문제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나와 부모님의 관계와 학교선배와의 관계 그리고 친구와의 관계는 다르고, 그 관계 사이에 알게 모르게 암묵적인 법칙이 존재한다. 관계를 유지하거나 어색하게 만들기 싫다면, 이 법칙을 따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 여자친구가 잘못을 해도 여자친구 편만 들어야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 정말 마음 밑바닥에 있는 추한 생각이나 정말 가당치 않는 생각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생각해냈지만 정말 순간적인 마음이기 때문이다. 가끔 나도 이런 생각을 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 때마다 혹시나 그런 상황에 와도 인간답게 행동해야지 생각한다. 어릴 때 누가 자신이 살인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겠는가?

세상에 내 모든 것을 보여줄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슬프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너’의 관계성을 잘 이해하여 최대한 솔직하고 진심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누구든지 나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이해하여 최대한 내 자신을 알고 싶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