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누군가의 결혼보다 이혼이 더 큰 화제 거리이며, 셀럽들의 선행보다 악행이 무엇보다 빨리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한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영향력이 큰 문화 컨텐츠인 영화에서도 피해자의 상처와 아픔은 이용된다. “나는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2011년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감독의 연출력 및 배우들의 열연도 흥행의 한 몫을 했겠지만, 실제로 흥행의 가장 큰 원동력은 영화의 모티브가 된 광주 인화학교 사건 그 자체였다. 5년간 교장을 비롯한 여러 교직원들이 남녀 장애학생들에게 비인간적인 아동 학대와 성폭력을 가행한 사건. ‘엽기’와 ‘충격’이라는 단어 외에는 묘사할 길이 없는 이 끔찍한 사건은 사람들을 관심을 끌기는 충분한 사건이며, 이를 증명하듯 영화 도가니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4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대한민국 사회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이 고발영화로 인해 광주 인화학교 사건의 재수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광주 인화학교는 완전히 폐교되었으며, 인화학교의 재단이었던 우석재단도 자진 해산하게 되었다. 성폭행 사건에 대한 솜방망이 인식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측면으로는, 영화 도가니 만큼 우리나라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영화를 찾기는 힘들 것 이다. 하지만, 정작 광주 인화학교 사건의 피해자들은 영화를 통해 상처를 치유 받았을까?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피해자와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피해자의 아픔을 눈물과 분노로 소비했을 뿐이다. 피해자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고, 솜방망이식 처벌에 대해 분노했던 우리의 태도에서는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진정한 공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아픔은 언제나 이렇게 이용된다. 자극적이고 엽기적일수록 잘 팔리는 미디어의 특성으로 인해, 더 깊고 짙은 상처일수록 대중들은 이목을 집중한다. 그들이 얼마나 상처받고 아파했는지 궁금해 하는 대중들의 관음으로 인해 그들은 대중들의 가십거리가 되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기자들의 직업정신으로 인해 그들의 사생활이 노출된다. 또한, 장애인 대상으로 무슨 사건만 나면 언론에서는 ‘ㅇㅇ판 도가니’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수년간 피해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사건이 회자된다. 이러한 소모적인 관심과 무분별한 소환술은 피해자의 상처를 오히려 더 쓰라리게 만든다.
도가니로 인한 충격과 파장이 옅어질 때 쯤, 나는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정보를 보게 되었다. 제88회 아케데미 시상식의 최대의 화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수상이였지만, 나는 도미네이트된 영화 목록을 보며 2016년 개봉한 ‘룸’이라는 영화에 눈길이 갔다. 이 영화는 도가니처럼 비윤리적이고 잔혹한 사건인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프리츨 친딸 감금 강간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24년간 자신의 친딸을 납치하여 감금하고 강간하여, 7명의 아이들을 낳은 이 끔찍한 사건은 오스트리아는 물론, 전 세계를 경악시킨 사건이다. 모든 대학원생이 그러하듯, 그 당시의 나는 연구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한 상태였다. 이 답답한 심정을 눈물과 분노를 통해 해소하고자하는 소인배적 심정으로 영화 ‘룸’을 시청하였다.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을 감독은 시청각적으로 얼마나 잔인하고 생동감 있게 잘 구현할까?’라는 기대감으로 이 영화를 보던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화는 선정적인 방식으로 피해자들과 사건을 소환하지 않았다. 탐정 소설처럼 묻혀있던 비극적인 사건을 파해치며 전개해 나가던 종전의 여러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철저하게 피해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오직 엄마 조이와 아들 잭에 집중한다. 피해자들이 어떻게 사건을 이겨 냈는지, 그리고 사건 이후에 어떻게 자신들을 치유해 나가는지에 대한 성장에 집중한다.
영화는 3평 남짓의 작은 방이 세상의 모든 것인 아들 잭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잭은 방에서 태어나 평생을 방에서 보냈기에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비이상적인 일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TV에서 나오는 거북이를 허구의 동물로 생각하고, 단풍이 든 나뭇잎을 나뭇잎이라고 믿지 못하기도 한다.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영화가 진행되기에, 영화는 사건에 집중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범죄 현장이나 탐정놀이대신, 방 이외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아들 잭과 이를 타계하고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두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관객은 두 피해자의 입장에 스며들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그들이 끔찍한 공간에 서의 탈출에 성공했을 때, 우리는 두 사람이 드디어 넓은 세상에 나와 자유를 만끽하고 기뻐 할 거라는, 단순하고 순진한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 영화는 물질⦁공간적인 방탈출보다 더 잔인한 사회적 시선으로부터의 탈출로 이어진다. 영화 전반부에는 물리적인 억압과 폭력에 맞서 싸웠다면, 영화 후반부에서는 정신적인 고통과 사회적 시선과 맞서 싸우는 양상을 보여준다. 특히, 엽기적인 사건의 비참한 주인공으로 낙인찍혀 평생을 살아가야하는 ‘주인공 조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엄마 조이와 언론사의 인터뷰 장면은 실제 피해자들이 사건 후에도 얼마나 큰 상처를 입는지에 대해 보여 준다. 협소한 방에서 7년을 감금당하면서도 꿋꿋이 삶의 의지를 보이던 조이는 그날 밤 자살을 시도한다. 이 대목을 통해 영화는 대중과 언론에게 일침을 날린다. 사건보다 잔인한 것은 비극을 소비하는 사회의 관심이라고.
영화는 사건을 다루기보단 모자의 심경을 주로 표현하기에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영화는 단순한 즐거움을 주는 수단을 넘어서, 새로운 시각을 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에 하나임을 감안할 때, 영화 룸은 피해자들을 위한 진정한 소통 방식을 제시한다. 영화는 말한다. 더 깊고 더 짙은 상처를 가진 피해자일수록 사건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리기 보단, 그들의 입장을 헤아려주길. 피해자들의 성장영화지만, 나 또한 한층 성장한 듯 하다.